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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이야기들

서유럽 여행 #5 - 폼페이 유적

피렌체를 여행한 다음 날 폼페이로 이동을 합니다

폼페이는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산의 화산 폭팔로 최후의 날을 맞습니다

18시간 동안 수백억톤의 뜨거운 화산재가 도시로 쏟아져 내렸고

폼페이는 아비규환속에서 잿더미로 변했답니다


폼페이는 1748년에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초기의 발굴작업은 대체로 무책임 했으며

발굴자들은 주로 웅장한 건물이나 박물관에 진열할 보물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발굴은 1860년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가 발굴 감독이 되면서 종식되었다.

그는 발굴지 사이에 놓인 지역을 정비하고 꼼꼼히 기록했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폼페이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

당시에는 왼쪽이 보행자 전용이고 오른쪽이 마차 전용이었지만

지금은 오른쪽으로만 들어갈수 있습니다




바실리카

재판이나 상거래가 이루어지던 곳이라고 합니다




포로(포럼) 광장

종교, 정치, 상업의 중심지 역활을 했던 광장이라고 합니다




포로 광장에서 본 베수비오 산

베수비오 산은 산봉우리가 하나 였지만 화산 폭팔 이후 지금처럼 두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화산 폭팔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폼페이 시내의 어느 도로...

가운데로 마차가 다니고 양쪽 옆으로는 사람이 다녔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산재 속에서 발굴된 사람형상 1

폼페이를 발굴하던 학작들이 종종 발견된 빈 공간에 의문을 품고

석고를 부어보니 이런 형상들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사람형상 2

숨쉬기가 힘들어서 손으로 코를 덮고 괴로워하다 죽은 형상이라고 하네요




사람형상 3




개 형상




공중 화장실

튀어나온 돌을 나무로 잇고 구멍을 뚫어 볼일을 보았다고 하는데

가장자리로 물이 흘러 자연적으로 흘러내려갔다고 합니다




돌맷돌과 화덕

당시에도 돌맷돌로 곡식을 갈고 화덕에 익혀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탈리아가 화덕 피자로 유명한가 봅니다ㅎ




어느 집 대문에 있는 개 그림

작은 타일을 하나하나 붙여서 만들었는데 도둑을 쫓을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ㅎ




이 집이 폼페이에서 가장 부자가 살던 집 대문 입니다




이 부자는 인간이 아니고 신이라고 생각을 해서 동상을 세웠는데 인간과 틀리게 꼬리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ㅎ

동상을 만들려면 크게나 만들지....ㅎㅎ




마눌님 인증샷 한장 찍어 줍니다 ㅎ








폼페이의 중심도로

도로 가운데에 돌이 3개가 놓여 있는데 비 오는 날 사람들이 건널수 있도록 하였다는데

주 목적은 일정 크기 이상의 마차는 다닐수 없도록 한 조치였다고 합니다




청동으로 만든 유물과 양귀비꽃의 만남이 이색적 입니다




폼페이를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담은 모습...




폼페이를 나와 카프리로 가기위해 기차를 타고 소렌토로 이동을 합니다




폼페이의 최후 (인터넷에서 발췌)

화가 카를 프률로프의 작품으로 러시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림으로 봐도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짐작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조들은 화산 폭발로 아비규환속에서 죽고

후손들은 그 덕분에 편히 먹고 살고 있는

아이러니한 폼페이 입니다